'6.25사망자'에 해당하는 글 1건

반응형

6.25전쟁 이후 가장 활발해진 북한, 미국 관계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68년을 맞은 2018년, 싱가포르에서는 최초의 북미정상회담[링크]이 열렸고, 화해무드가 조성되었다.


북한은 미국의 북한 내 억류자 인도와 함께 핵폐기 이행 프로젝트에 들어갔고, 또한 6.25전쟁 전사자에 대해 대규모 사망자 유해를 전달하기로 하였다.


6.25전쟁 경과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군은 T-34 전차 240대로 3.8선을 넘어 남한을 침략했다. 6.25전쟁 발발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했고, 3개월만에 대구, 부산까지 파죽지세로 밀려들었다.


7월 1일 미군 참전을 시작으로 16개국이 193만명의 군대를 파견해 남한군 협력으로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하였으며, 1951년 9월 15일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해 북한의 허를 찌르고, 이어 9월 28일에는 서울 수복을 하기 이른다.


남한과 유엔 연합군의 승리로 끝날 것처럼 보이던 6.25전쟁은 1950년 10월 25일 중공군이 참전을 선언하며 양상이 바뀐다. 인해전술로 밀려드는 중공군 앞에 연합군은 다시 서울을 포기하고 퇴각하니 이것이 1.4후퇴다.


6.25전쟁 전사자



6.25전쟁은 3년 동안 밀고 밀리는 전투 끝에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을 맺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6.25전쟁에서 남한 사망자는 13만7천899명, 북한 전사자 52만명, 중공군 사망자는 13만 6천 여명에 이른다.


유엔군 전사자는 3만7천902명인데, 이중 미국이 가장 많은 3만6516명, 영국군(1천78명), 터키군(966명), 캐나다군(516명)으로 뒤를 이은다.


6.25전쟁 미군 전사자 유해 전달


미군 유해 송환은 1980년대 말 부터 지금까지 약 340구가 판문점을 통해 송환된 바 있으며, 이번 유해 전달로 역대 최대규모인 250구 이상이 송환될 예정이다.


2018년 6월 23일 미군 유해를 임시로 담을 나무 상자 100여 개와 유엔기, 관 받침대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인근으로 이송되었고, 6월 25일에는 어떻게 북한에 전달해야 할지 협의했다.


미군 유해는 군 수송기나 경의선 육로의 자동차로 전달 예정이며, 오산 미군기지에는 유해를 넣을 금속관 158개가 대기 상태다. 


유해는 오산의 미군 공군기지에서 비행기편으로 미국 하와이 히컴 공군기지에 보내지게 되며, 미군이 아닌 유해는 해당 국가로 보내질 예정이다.

반응형

WRITTEN BY
Dondekman
영감을 주는 뉴스

,